영업비밀 침해 5배 손해배상, 어떤 경우에 인정될까
직원이 퇴사하면서 고객 리스트를 들고 나갔는데, 막상 소송을 해도 인정되는 배상액이 너무 적어 실익이 없다는 이야기를 기업 자문 과정에서 종종 듣습니다. 실제로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손해액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 피해 기업이 기대한 만큼의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024년 1월 25일 국회를 통과하고 같은 해 2월 20일 공포된 개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20321호)이 2024년 8월 21일부터 시행되면서 제재 수준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가 기존 손해액의 3배에서 5배로 상향되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손해배상 한도가 5배로 높아졌다
영업비밀 침해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실제 부담하게 되는 손해배상액이 낮다면 침해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술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기업의 입장에서도 침해로 인한 손해를 제대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서는 법원이 손해액의 5배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5배'는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되면 당연히 손해액의 5배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법에서 정한 요건과 구체적인 침해 경위 등을 토대로 법원이 배상액을 판단하게 됩니다.
손해배상 외에 함께 강화된 제재들
이번 개정에서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다른 제재도 함께 강화되었습니다.
-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상향(제14조의2 제6항):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 및 아이디어 탈취의 경우 손해액의 3배였던 배상 한도를 5배로 상향
- 법인 벌금형 강화(제19조 양벌규정): 법인에 대한 벌금형을 행위자에게 부과되는 벌금의 최대 3배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강화
- 침해품 및 제조설비 몰수(제18조의5 신설):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생긴 물건과 침해행위에 사용된 일정한 물건 등에 대한 몰수 규정 신설
- 법인 공소시효 연장(제19조의2 신설): 영업비밀 침해죄에 관한 법인의 공소시횜를 행위자와 동일한 10년으로 규정
특히 제조설비까지 몰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영업비밀을 이용한 생산활동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5배 배상에서 '고의'는 어떻게 판단할까
징벌적 손해배상은 모든 영업비밀 침해에 자동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제14조의2 제6항에 따른 배상을 위해서는 고의적인 침해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법원은 배상액을 정하는 과정에서 침해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침해행위로 인한 피해 규모, 침해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침해 기간과 횟수, 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침해자의 재산상태, 피해구제 노력 등 법에서 정한 사정을 고려하게 됩니다.
기업이 해당 정보를 평소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실제 분쟁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회사가 그 정보를 비밀로 취급해 왔고 직원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정은 영업비밀 해당 여부뿐 아니라 구체적인 침해 경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사의 비밀관리 조치와 침해자의 고의는 같은 요건이 아닙니다. 각각 어떤 사실을 통해 인정될 수 있는지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구분해서 살펴야 합니다.
먼저 그 정보가 '영업비밀'이어야 한다
5배 손해배상을 논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문제가 있습니다. 침해된 정보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해야 합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가 정한 영업비밀의 요건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비공지성: 해당 정보가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을 것
- 경제적 유용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정보일 것
- 비밀관리성: 비밀로 관리되고 있는 정보일 것
기술정보뿐 아니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생산·판매 방법, 고객정보, 영업자료 등도 영업비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분쟁에서는 회사가 해당 정보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가 자주 문제됩니다. 회사 내부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법률상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영업비밀 관리체계에서 확인할 것
영업비밀로 보호하려는 정보가 있다면 실제 관리 상태를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사항입니다.
- 임직원과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고 보호할 정보의 범위를 적절하게 정하고 있는지
- 필요한 자료에 대외비 또는 Confidential 등의 표시를 하고 있는지
-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인원과 권한을 관리하고 있는지
- 전산상 접근통제나 비밀번호 설정, 물리적 보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 보안교육을 실시하고 필요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
- 퇴직 과정에서 회사 자료의 반환·삭제 및 비밀유지의무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지
모든 기업이 위 조치를 동일하게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유한 정보의 성격과 기업의 규모, 업무 방식에 따라 적절한 관리 방법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분쟁이 발생하면 회사가 해당 정보를 어느 정도 중요하게 취급했고, 누가 접근할 수 있었으며, 직원들에게 비밀정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시켰는지가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평소의 관리 상태가 부족하다면 침해행위를 문제 삼기에 앞서 해당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다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글 첫머리의 고객 리스트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 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영업비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리스트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었는지, 회사가 어떻게 관리했는지, 누가 접근할 수 있었는지, 퇴사한 직원이 그 정보의 비밀성을 알고 있었는지에 따라 실제 분쟁의 양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제재가 강화됐지만, 그 적용을 검토하려면 결국 침해가 발생하기 전 회사가 해당 정보를 어떻게 보유하고 관리해 왔는지부터 확인하게 됩니다.